점수가 낮은 것과 점수가 없는 것은 다른 문제다. 그리고 없는 쪽이 더 곤란할 때가 있다.
앞 글에서 카드를 안 쓰는 것이 안전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잠깐 했다. 이번 글에서는 그 이유, 그러니까 금융거래 기록이 적으면 평가하는 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.
기록이 없으면 점수를 안 매긴다
신용평가회사는 금융회사에서 모은 거래 기록으로 점수를 낸다. 대출을 받았는지, 카드를 썼는지, 제때 갚았는지 같은 것들이다. 그 기록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? 낮은 점수가 나올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.
신용평가에 활용할 신용정보가 없거나, 미성년자(만 18세미만)와 고령자(만 100세이상)에 대해서는 신용평점을 산출하지 않습니다.
— 나이스평가정보 개인신용평점 공시
아예 안 나온다. 0점도 아니고 낮은 점수도 아니고, 숫자 자체가 없는 상태다.
돈을 빌리려는 쪽에서 보면 이 사람은 위험한 사람이 아니라 판단할 자료가 없는 사람이다. 그리고 판단할 자료가 없으면 대개 보수적으로 처리된다. 갚을 것 같다는 근거도 없고 못 갚을 것 같다는 근거도 없는데, 돈을 빌려주는 쪽은 앞의 근거를 원하기 때문이다.

기록이 적으면 점수가 낮게 나온다
기록이 아예 없는 것과 적은 것은 또 다르다. 금융거래 기록이 적은 사람을 따로 부르는 말이 있는데, 금융당국은 이들을 신용거래정보부족자라고 쓴다.
금융위원회가 2026년 1월에 낸 자료에 이 사람들이 실제로 몇 점을 받는지 나온다.
노년층, 청년, 주부 등으로 구성되는 신용거래정보부족자(Thin filer)에게 '24년말 기준 평균 710점 수준의 신용점수가 부여되고 있어 이들을 포용할 수 있는 평가체계 개선이 필요하다
— 금융위원회, 신용평가체계 개편 TF 킥오프
710점. 1,000점 만점이니 언뜻 중간보다 위로 보인다. 그러면 이 사람들은 평균쯤 되는 걸까? 그렇지 않다. 이 숫자를 절대값으로 읽으면 틀린다.
710점을 절대값으로 읽으면 틀린다
같은 자료에 분포가 함께 나온다.
개인신용평가대상의 28.6%에 해당하는 소비자에게 950점 이상이 부여되는 등 개인신용평점 상위점수 구성비가 크게 증가하였다
— 같은 자료
열 명 중 셋 가까이가 950점을 넘는다. 이런 분포에서 710점은 중간이 아니다. 뒤쪽이다.
나이스평가정보가 공개한 2025년 12월 통계를 놓고 세어보면 더 분명해진다. 평가 대상이 4,968만여 명인데 그중 900점대가 2,380만여 명이다. 나눠보면 47.9%다. 두 명 중 한 명이 900점을 넘는다.
700점대는 1,227만여 명으로 24.7%다. 710점인 사람 위로는 900점대 47.9%가 통째로 있고, 그 사이에 800점대가 또 들어간다. 800점대가 몇 퍼센트인지는 이 자료로 알 수 없지만, 그것이 얼마든 710점 위에 있는 사람이 절반을 넘는다는 것은 분명하다. 숫자만 보면 중간보다 위 같은데 실제로는 아래쪽이다.
점수라는 것이 원래 그렇다. 숫자 자체가 아니라 남들이 어디에 있느냐가 내 위치를 정한다. 시험에서 70점이 높은지 낮은지는 평균을 알아야 답할 수 있는 것과 같다.
그래서 금융위원회가 개편을 검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. 위에서 인용한 자료의 제목이 「신용평가체계 개편」이고, 문제로 지목한 것이 상위 점수 쏠림이다. 대부분이 950점 위에 있으면 그 점수로는 사람을 가르지 못한다.
그래서 무엇을 하면 되나
기록이 없어서 점수가 안 나오는 상태라면, 할 일은 점수를 올리는 것이 아니라 기록을 만드는 것이다. 앞 글에서 본 대로 평가에 들어가는 것은 갚은 이력이므로, 작은 거래라도 제때 갚은 기록이 쌓이면 평가할 자료가 생긴다.
여기서 조심할 것이 하나 있다. 기록을 만든다고 빚을 늘릴 이유는 없다. 앞 글에서 본 대로 카드 잔액이 늘어나는 것은 부정 요인이다. 쓰고 다 갚는 것과 빌려두는 것은 다르다. 이 구분은 신용점수, 카드를 많이 쓰면 오를까에 항목별로 정리해두었다.
이미 빚이 있는 경우라면 순서가 하나 더 붙는다. 갚는 것 자체가 기록이 되므로 안 갚고 두는 것보다 낫지만, 어느 빚부터 갚느냐는 이자율과 상황에 따라 답이 뒤집힌다. 그 판단 기준은 대출을 빨리 갚는 게 항상 유리할까에 정리해두었다.
그리고 내 점수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부터 본다. 점수가 안 나오는 것인지, 나오는데 낮은 것인지, 나오는데 분포상 뒤쪽인 것인지는 다른 이야기이고 할 일도 다르다.
이번 글에서는 신용정보가 없거나 적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서 알아보았다. 기록이 없으면 점수가 아예 안 나오고, 적으면 낮게 나온다. 그리고 그 낮음은 숫자 자체가 아니라 남들이 어디에 있느냐로 정해진다.
오늘 신용평가회사에서 내 점수를 한 번 확인해보자. 조회 자체는 점수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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